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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철현의 월요묵상] 40일간 자신을 '검역'할 의지가 있는가

(서울=뉴스1) 배철현 고전문헌학자 | 2020-02-17 06:30 송고 | 2020-02-17 11:02 최종수정
배철현 고전문헌학자.© 뉴스1
누구나 한 단계에서 안주하지 않고 다음 단계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통과해야 할 장소가 있다. 우리는 그 장소를 경계, 문지방, 혹은 현관과 같은 용어로 표현한다.

이 문지방(門地枋)은 이전 단계와 구분하기 위해 도드라져 솟아오른 구조물이다. 통과를 시도하는 자가 아무런 생각도 없이 넘어가기를 시도한다면, 문지방에 발이 걸려 넘어질 것이다.
또한 이 문지방은 이쪽과 저쪽을 구분하는 터부의 공간이자 '현관'(玄關)이다. 현관은 원래 불교 사찰에서 세속의 공간인 사바세계와 천상의 공간인 극락세계를 구별하기 위해 만든 상징적인 구조물이다.

이곳에는 사천왕들이 무기를 든 무시무시한 모습을 하고서, 경내로 진입하려는 사람들을 지켜본다. 이 공간은 바깥도 아니고 안도 아닌 '가물가물한(玄) 문의 빗장(關)'이다. 구도자가 몸과 마음을 아직 정결하게 하지 않았다면, 뒤돌아서 사바세계로 돌아가야 한다.

이 현관에서 통과자를 지켜보는 동물이 괴물(怪物)이다. 괴물은 이쪽에도 저쪽에도, 위에도 아래에도 속하지 않기 때문에 하이브리드로 등장한다. 그 대표적인 괴물이 스핑크스다. 이집트 고대도시 기자에 가면, 죽음과 영생의 공간이 피라미드의 입구를 지키는 스핑크스가 있다.
그리스 비극 '오이디푸스 왕'에서 스핑크스는 역병(疫病)이 돌고 있는 테베 안으로 진입하려는 오이디푸스의 길을 막고 질문한다. "아침에는 네발로 걷고, 점심에는 두발로 걸으며, 저녁에는 세발로 걷는 동물이 무엇이냐?" 오이디푸스는 '인간이다'라고 말한다.

오이디푸스의 아버지 라이오스는, 델피신전에서 받은 불길한 신탁을 받았다. 그의 아들, 오이디푸스가 자신을 살해할 것이라는 점괘였다. 라이오스는 오이디푸스가 더 이상 인간으로서 활동하지 못하도록, 태어나자마자 그의 발을 명주실로 꽁꽁 묶은 후, 야산에 유기해 죽게 놔둔다.

지나가던 목동이 그를 발견해 생명을 유지했다. 목동은 오이디푸스의 이름을 '발(푸스)이 퉁퉁 부은(오이디) 자'로 지었다. 오이디푸스가 이제 자신의 운명을 알아보기 위해 두 발을 땅에 굳게 딛고 테베로 입장하려 한다.

통과의례의 장소가 문지방 혹은 문지방과 같이 괴물이 출몰하는 사막이라면, 통과의례의 기간은 '40일'이다. 유대인들에게 '40'이란 숫자는 특별하다. 40일은 변화의 기간이다.

기원전 12세기 중동지방에서 문명과 문화의 메카가 있었다. 그 당시 파라오 람세스가 치리하는 동안, 이집트는 오늘날 미국이었고, 이집트 도시 '비돔'과 '람세스'는 뉴욕과 같은 도시였다.

배불리 먹는 것이 행복이라고 착각하는 '온갖 잡족들'이 이곳으로 일자리를 찾아 인구가 점점 많아지는 나라였다. 그들은 육체의 쾌락을 최고의 가치라고 여기는 유물론자들이었다.

그런 삶을 정말 최선인지 숙고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도시문명의 삶을 등지고 자발적으로 무시무시한 경계의 공간인 '광야'(廣野)로 진입한다. 이들은 광야에서 40년이란 기간을 보낸다. 고대인들에게 40년은 한 세대가 사라지고 다음 세대가 등장하는 전복적인 체제변화의 시간이다.

광야는 태곳적부터 낮에는 작열하는 태양이 보낸 열풍이 불고, 저녁에는 달이 보낸 한풍이 불어, 모든 것이 평평하게 펼쳐진 공간이다. '광야'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미드바르'(midbar)는 '바람에 의해 굳게 다져진 공간'이란 뜻이다.

광야는 인간을 유혹하는 것들이 없다.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다. 이 잡족(雜族)들은 이 기간을 통해 '선택받은 민족'으로 다시 태어난다.

성서는 이런 과감한 시도를 한 사람들을 '히브리인들'이라 불렀다. '히브리'란 단어의 원래 사회학적인 용어로 '임시 외국인 노동자' 혹은 '나그네'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들어와,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노동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히브리'다. 이들은 스스로 자기가 속한 혈연공동체를 떠나 경제적 자유를 찾아 이러 저리 떠도는 사람들이다.

'히브리'라는 단어의 어근인 히브리어 동사 '아바르'(ʿābar)는 '자신이 안전하게 거주하던 고향을 떠나 광대한 지역이나 강을 건너, 다른 지역으로 진입하다'란 뜻이다. 고대 근동사회에서 도시는 강 주변이나, 강줄기를 새로 만든 수로 근처에 건설했다.

대부분이 사막이기 때문에 한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의 이동은 끝없이 펼쳐진 사막이나 강을 건너야 했다. 고대사회에서 자신의 고향이나 도시를 떠나는 일은 곧 죽음이었다.

고대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 법전'에도 극형이 성벽 밖으로 범죄자들을 내쫓는 행위다. 그래서 '히브리인'의 어원이 되는 '아바르'라는 히브리어 동사는 '법을 위반하다'라는 의미도 있다.

사실을 '법을 위반하는 것'이 아니라, 육체의 욕망의 노예로 살기 보다는 자신을 자신답게 만드는 자유를 찾아, 자신에게 익숙한 고향을 떠나,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는 행위다.

40이란 숫자는 모세가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을 때도 등장한다. 모세는 40일 동안 두 번의 금식기도를 감행했다.

금식이란 인간 스스로가 자신의 기본적인 욕망인 식탐을 억제할 수 있는지 가만히 바라보려는 훈련이다. 더 나아가 자신이 필요이상으로 먹고 있어, 굶고 있는 동료들에 대한 연민을 키우는 교육이다.

모세는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았다. 십계명은 모두 '하지 말라'라는 금지로 돼있다. 행복은 자신이 굳이 하지 않아도 생각, 말, 혹은 행위를 절제할 때, 등장한다. 모세가 십계명의 중요성을 깨닫기까지 40일이 걸렸다. 그는 금식을 통해, 10가지 금지목록을 가지고 하산한다.

사람들은 아직도 금송아지를 숭배하고 있었다. 그들은 40년 광야훈련의 원래 목적을 잊었다. 그들에게 이런 훈련은 더 많은 재화를 얻기 위한 욕망이었다. 모세는 화가 나 십계명이 새겨진 돌판을 부순 뒤, 다시 산에 올라가 40일을 지냈다.

러시아 낭만주의 해양화가 이반 아이바좁스키(1817-1900) '러시아 남부 구르조프 만의 밤'(Ночь в Гурзуфе), 유화, 1891, 61 x81.3㎝.© 뉴스1
러시아 낭만주의 해양화가 이반 아이바좁스키(1817-1900) '러시아 남부 구르조프 만의 밤'(Ночь в Гурзуфе), 유화, 1891, 61 x81.3㎝.© 뉴스1

40일은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침묵의 소리, 양심의 소리, 혹은 함석헌 선생이 말한 '자신만의 골방의 소리'를 경청하는데 걸리는 시간이다. 

고대 이스라엘의 예언자인 엘리야는 그를 살해하려는 북이스라엘의 아합 왕과 이세벨 여왕으로부터 도망쳐 광야로 간다. 그 사막 한 가운데, 모세가 십계명을 깨달아 받았다는 시내산 동굴로 들어가 40일 동안 기도했다. 

아직도 그런 사람이 많지만, 당시 사람들은 신이 천둥, 번개, 지진과 같은 자연현상에 존재한다고 믿었다. 신은 이제 자신은 그런 자연현상에 있지 않고, 인간의 마음속에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줄 참이다. 

엘리야는 40일 동안 한 동굴에 거주한다. 이 동굴은 원효가 의상과 당나라로 유학 갈때 하룻밤을 지냈다는 이름 모를 장소이기도 하다. 

신은 자신의 모습을 새로운 방식으로 드러낸다. 신은 '섬세한 침묵의 소리'에 있었다. '침묵의 소리'의 히브리어 표현은 '콜 더마마 다까'다. '섬세한'이란 의미를 지닌 형용사 '다까'(daqqa)는 자신에게 온전히 몰입하는 '섬세한 상태'를 지칭한다.

이 상태를 수련한 자는 남들이 들을 수 없는 형용모순인 '침묵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신은 건물에 있지 않고, 인간의 심연에 존재한다. 그것은 원효가 깨달았다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사상과 같다. 

목수로 생계를 유지하던 청년 예수는 문지방의 상징인 광야와 사십일을 통해, 인류의 구원자가 됐다. 그는 광야에서 회개운동을 벌이고 있는 세례요한을 찾아가 세례를 받는다. 세례란 과거의 자신을 버리고 새로운 자신으로 살아가겠다는 통과의례다. 

지중해 지역에서 물은 혼돈을 상징한다. 침례는 바로 혼돈을 상징하는 물로 입수했다가 질서를 상징하는 바깥으로 나오는 의례다. 예수는 이 경험을 통해 하늘에서 들려오는 '침묵의 소리'를 들을 정도로 영적으로 승화된 상태였다. 

복음서 기록에 의하면 소위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서 40일동안 지낸다. 그는 금식을 통해 자신을 바라보는 수련을 감행했다. 그는 광야에서의 40일 수련을 재물에 대한 욕망과 권력에 대한 욕심, 그리고 명예에 대한 허영을 절제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그는 이제 어둠 속에서 헤매는 인류에게 '사랑'이라는 빛을 선물로 주기로 작정했다. 그는 스스로 빛이 되기로 결심했다. 그는 그 빛으로 자신을 소멸시키고,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버려야 할 단점과 부추겨야 할 장점을 직시할 수 있는 밝음을 주는 삶을 살았다.

40일은 중세 이탈리아의 베네치아 공화국에게 중요한 상징이었다. 1453년 동로마 제국이 멸망하자 베네치아는 르네상스의 주역이 됐다. 베네치아인들은 중국, 인도, 중동,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수입한 진귀한 수입품을 이탈리아와 유럽전제로 수출하면서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문제는 해상무역을 통해 오는 사람들과 물건과 함께 올 전염병이었다. 그들은 14세기 이웃도시 제노바가 흑사병으로 거의 전멸위기에 빠졌다는 사실을 알고 특단의 조치를 취한다. 그들은 물건을 실은 배가 베네치아 항구에 바로 입항하는 것을 불허했다. 

오늘날처럼, 바이러스를 측정할 수 있는 의학기술이 부재한 상태에서, 그들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은 그 선박을 공해에서 사십일 동안 머물게 하는 조치였다. 

영어표현 '앳 베이'(at bay)는 '만(灣)에 머물게 하다'라는 의미도 있지만 '움직이다 못하게 만들다'란 뜻이다. 그들은 배를 항구근처 만에 처음에는 30일 동안 머물게 했다. 그러다 성서에 등장하는 전통을 수용해 40일로 늘렸다. 

그들은 이 조치를 통해 다른 지역에서 온 선원들이나 물건을 통해 전염병이 유입되는 것을 막았다. 그들은 이 조치를 이탈리아어로 '콰란티나 조르니'(quarantina giorni)라고 불렀다. '40일'이란 뜻이다. 

'40'을 의미하는 이탈리아어 '콰란티나'에서 '검역'이란 영어단어 '쿼런틴'(quarantine)이 유래했다. '쿼런틴'(quarantine)이란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유해간 동식물을 '격리'하는 조치다.

세계 최강국을 지향하는 중국과 일본이 '코로나19'(신종코로나바이러스)에 대처하는 모습은 원시적이다. 중국은 1100만명이나 사는 도시 우환과 중국전체에 검역장소를 지정했다. 일본은 베네치아 공화국이 500년 전 하던 행태를 답습한다. 요코하마항에 정박 중인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가 바이러스 배양접시가 됐다. 

지금이라도 일등주의만 지향하는 욕심, 욕망, 그리고 허영을 버리고, 세계최고의 과학자들에게 도움을 청해, 더 이상 전염병이 확산되지 않기를 바란다. 선진국이란 신종바이러스처럼, 보이지 않는 가치를 소중하게 여길 때, 얻게 되는 영광이다.

'40일'은 내 자신을 검역(檢疫)하는 기간이다. 새로운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은 인간, 공동체, 그리고 국가를 위한 절호의 기회다. 이 시간 동안 나를 심오하게 검사(檢査)해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할 것이다. 만일 나를 과거의 나로, 구태의연한 나로 되돌리려는 '전염병'과 같은 습관이 있다면, 그것을 소멸하게 만들 것이다. 

이 기간은 나는 깊이 바라보는 관찰의 시간이면서, 나를 소멸시키는 수련의 시간이다. 당신은 40일간 자신을 검역할 의지가 있는가?


lgir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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